티스토리 뷰

카테고리 없음

EP1. 광속의 귀환

민자르 2025. 5. 25. 21:21
반응형

 

2025년 7월 17일, 서울.

정오 무렵, 맑던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먹구름도, 일식도 아니었다. 그림자처럼 천천히 드리우는 어둠은 도시의 고층 건물들 사이로 기묘하게 퍼져나갔다.

먼저 카메라를 든 이들이 하늘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곧 모두가 그것을 보게 되었다.

도심 상공, 약 3킬로미터 상공에 지름 2.7킬로미터에 달하는 초대형 구조물이 떠 있었다. 유기적인 곡선과 메탈릭한 광택, 인공 구조물임이 분명하지만 어디에도 날개나 엔진, 추진 장치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무중력 상태에서 정지해 있는 별 하나처럼, 조용히 도시 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첫 충격이 지나자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꺼내들었고, SNS에는 "하늘의 알", "서울 UFO", "차원의 틈" 같은 해시태그가 실시간으로 트렌드를 장악해갔다.

 

한편, 대전 한국천문연구원.

이수혁 박사는 정오 직전부터 서울과 일본 도쿄, 중국 베이징 등에서 거의 동시에 포착된 대형 비행물체의 데이터를 검토하고 있었다. 관측 가능한 모든 스펙트럼을 동원했지만 물체의 밀도도, 반사율도, 질량도 명확하게 계산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상한 점은—그 물체가 언제 지구 궤도에 진입했는지 아무 기록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수혁은 자신의 분석 프로그램에 마지막으로 남겨둔 기능, 역추적 궤도 분석 명령어를 실행했다. 그의 AI 분석기는 수 초간 침묵한 후 한 문장을 출력했다.

"해당 물체는 태양 중심의 공전 궤도 상에서 약 1AU를 1회 순회한 항적을 보입니다."

그는 한참 동안 그 문장을 들여다보다가, 조용히 되뇌었다.

"지구의 공전 궤도와 같다…"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이 궤도를 돈다면, 내부 시간은 수십 년, 외부 시간은 수천만 년이 흐른다. 이론적으론 가능하지만, 현실에서 실행한 존재는 없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정체도, 출발 시점도 불확실해. 아직은 가설일 뿐이야.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저건… 과거에서 온 물체일 수도 있어."

 

오후 3시 42분, 서울.

상공의 거대 구조물 하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매끄럽게 갈라진 표면 사이로 진동과도 같은 저음의 울림이 퍼졌다.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가 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

이윽고 그 안에서 다수의 구형 구조물이 떨어져 나와 낙하산처럼 천천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이 물체가 단순한 탐사선이나 정찰기가 아님을 직감하게 했다.

구조물들이 도심 주변 광장, 공터, 강변 등에 안착했다. 하나같이 매끄러운 표면을 가진 그 구형체들은 지상에 닿자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열린 고치에서 나온 것은 놀랍게도—공룡이었다. 정확히는, 공룡을 연상케 하는 외형의 이족 보행 생명체였다. 인간보다 약간 크며, 양팔과 다리는 근육질이었고 눈동자에는 맹수의 본능 대신 고요한 지성이 담겨 있었다.

그의 가슴에는 번역 장치로 추정되는 기계가 장착되어 있었고, 그것은 전파를 통해 사람들의 귀에 전혀 새로운 언어를 중첩된 한국어로 번역해 전달했다.

"우리는 돌아왔다." "이곳은 우리의 고향이다. 우리는… 사우로디언이다."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서울은 즉각 통제 구역으로 지정되었고, UN은 긴급 안보 회의를 소집했다. 미국, 중국, 러시아는 전투기와 정찰 위성을 띄우며 구조물의 기술을 탐지하려 했다.

여론은 두 갈래로 갈렸다. 그들을 외계 생명체로 보는 쪽과, 오래전에 지구를 떠났던 고대 생명체의 후예로 보는 쪽. 그러나 아직 어느 쪽도 증명되지 않았다.

사우로디언은 자신들이 6500만 년 전 지구에서 출발했다고 주장했다. 멸망 직전, 대충돌을 피하기 위해 시간여행 대신 상대성 이론을 활용한 궤도 비행을 감행했으며, 그 결과 내부 시계로는 단 38년 만에 2025년의 지구에 도달한 것이라고 했다.

그들이 보여준 첫 자료는, 익룡 뼈와 유사한 생물의 해부도, 고대 지질 구조에 대한 3D 지도, 그리고 지구를 공전 궤도에서 촬영한 연속 사진들이었다. 모두 지금까지 인류가 보지 못한 정밀성과 관측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인류는 그들 모두를 반긴 것은 아니었다. 일부는 그들을 경외했고, 또 다른 일부는 두려워했으며, 소수는 이미 '위협'이라 명명했다.

그리고, 그 공포는 현실이 되어 다가왔다.

오후 5시 26분.

또 하나의 물체가 서울 상공에 나타났다. 이번에는 이전보다 작지만 훨씬 날카롭고 공격적인 외형이었다. 검게 빛나는 날카로운 갑피, 방사형 배치된 구조물, 뚜렷한 무장 형태의 돌기들.

사우로디언 대표 라그노스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시선을 떼지 못하고 말했다.

"설마… 그들도 궤도를 따라왔던 건가?"

그의 말끝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과거는 끝나지 않았다. 이제, 진짜 미래가 시작된다.”

728x90
댓글